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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AI 초벌 · 사람 검수 미실시 · 대본: 라틴어 편집 본문
원어 대본
라틴어 편집 본문 · CSEL 47, 568쪽Nihil sine origine nisi deus solus. quae quantum praecedit in statu omnium rerum, tantum praecedat necesse est etiam in retractatu earum, ut constare de statu possit, quia nec habeas dispicere quid quale sit, nisi certus an sit, cum cognoueris unde sit. et ideo ex opusculi ordine ad hanc materiam deuolutus apostoli quoque Pauli originem a Marcione desidero, nouus aliqui discipulus nec ullius alterius auditor, qui nihil interim credam nisi nihil temere credendum, temere porro credi quodcumque sine originis agnitione credetur, quique dignissime ad sollicitudinem redigam istam inquisitionem, cum is mihi adfirmatur apostolus, quem in albo apostolorum apud euangelium non deprehendo. denique audiens postea eum a domino adlectum iam in caelis quiescente, quasi improuidentiam existimo, si non ante sciit illum sibi necessarium Christus, sed iam ordinato officio apostolatus et in sua opera dimisso
라틴어 편집 본문 · CSEL 47, 569쪽ex incursu, non ex prospectu adiciendum existimauit, necessitate, ut ita dixerim, non uoluntate. quamobrem, Pontice nauclere, si numquam furtiuas merces uel inlicitas in acatos tuas recepisti, si numquam omnino onus auertisti uel adulterasti, cautior utique et fidelior in dei rebus edas uelim nobis, quo symbolo susceperis apostolum Paulum, quis illum tituli charactere percusserit, quis transmiserit tibi, quis imposuerit, ut possis eum constanter exponere. ne illius probetur, qui omnia apostolatus eius instrumenta protulit, 'ipse se', inquit, 'apostolum est professus, et quidem non ab hominibus nec per hominem, sed per Iesum Christum'. plane profiteri potest semetipsum quis, uerum professio eius alterius auctoritate conficitur. alius scribit alius subscribit, alius obsignat alius actis refert. nemo sibi et professor et testis est. praeter haec utique legisti multos uenturos, qui dicant: ego sum Christus. si est qui se Christum mentiatur, quanto magis qui se apostolum praedicet Christi? adhuc ego in persona discipuli et inquisitoris conuersor, ut iam hinc et fidem tuam obtundam, qui unde eam probes non habes, et impudentiam suffundam, qui uindicas et unde possis uindicare non recipis. sit Christus, sit et apostolus nunc alterius, dum non probantur nisi de instrumento creatoris. nam mihi Paulum etiam Genesis olim repromisit. inter illas enim figuras et propheticas super filios suos benedictiones Iacob, cum ad Beniamin direxisset: Beniamin, inquit, lupus rapax; ad matutinum comedet adhuc et ad uesperam dabit escam. ex tribu enim Beniamin oriturum Paulum prouidebat, lupum rapacem ad matutinum comedentem, id est prima aetate uastaturum pecora
라틴어 편집 본문 · CSEL 47, 570쪽domini ut persecutorem ecclesiaium, dehinc ad uesperam escam daturum, id est deuergente iam aetate oues Christi educaturum ut doctorem nationum. nam et Saulis primo asperitas insectationis erga Dauid, dehinc paenitentia et satisfactio, bona pro malis recipientis, non aliud portendebat quam Paulum in Saule secundum tribus et Iesum in Dauid secundum uirginis censum. haec figurarum sacramenta si tibi displicent, certe Acta Apostolorum hunc mihi ordinem Pauli tradiderunt, a te quoque non negandum. inde apostolum ostendo persecutorem non ab hominibus neque per hominem, inde et ipsi credere inducor, inde te a defensione eius expello nec timeo dicentem: tu ergo negas apostolum Paulum? non blasphemo quem tueor. nego, ut te probare compellam; nego, ut meum esse conuincam. aut, si ad nostram fidem spectas, recipe quae eam faciunt; si ad tuam prouocas, ede quae eam praestruunt. aut proba esse quae credis aut, si non probas, quomodo credis? aut qualis es aduersus eum credens, a quo solo probatur esse quod credis? habe nunc et apostolum de meo sicut et Christum, quam meum apostolum quam et Christum: isdem et hic dimicabimus lineis, in ipso gradu prouocabimus praescriptionis, oportere scilicet et apostolum, qui creatoris negetur immo et aduersus creatorem proferatur, nihil docere, nihil sapere, nihil uelle secundum creatorem, et inprimis tanta constantia alium deum edicere, quanta a lege creatoris abrupit. neque enim uerisimile est, ut auertens a Iudaismo non pariter ostenderet, in cuius dei fidem auerteret, quia nemo transire posset a creatore nesciens, ad quem transeundum sibi esset. siue enim Christus iam alium deum reuelauerat, sequebatur etiam apostoli testatio, uel ne non eius dei apostolus
라틴어 편집 본문 · CSEL 47, 571쪽haberetur, quem Christus reuelauerat, et quia non licebat abscondi ab apostolo qui iam reuelatus fuisset a Christo; siue nihil tale de deo Christus reuelauerat, [at] tanto magis ab apostolo debuerat reuelari qui iam non posset ab alio, non credendus sine dubio, si nec ab apostolo reuelatus. quod idcirco praestruximus, ut iam hinc profiteamur nos proinde probaturos nullum alium deum ab apostolo circumlatum, sicut probauimus nec a Christo, ex ipsis utique epistolis Pauli, quas proinde mutilatas etiam de numero forma iam haeretici euangelii praeiudicasse debebit.
한국어 초벌
기원 없이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기원은 모든 사물의 존재 상태에서 앞서는 만큼, 그 사물들을 다시 검토할 때에도 그만큼 앞서야 한다. 그래야 그 상태에 대해 확정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서 그것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며 어떠한지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저작의 순서를 따라 이 주제에 이른 나는 사도 바울의 기원도 마르키온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새 제자이고 다른 누구의 가르침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경솔하게 믿어서는 안 되며 기원을 알지 못한 채 믿는 것은 무엇이든 경솔하게 믿는 것이라는 것 말고는 당분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또 내가 복음서의 사도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사도라고 나에게 단언될 때, 나는 이 탐구를 마땅한 권리에 따라 엄밀한 검토에 부친다. 게다가 그가 나중에, 주가 이미 하늘에서 쉬고 있을 때 주에게 뽑혔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이것을 일종의 선견 부족으로 여긴다. 그리스도가 그가 자기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고, 사도직이 이미 정해지고 사도들이 저마다의 일로 보내진 뒤에야 내다보아서가 아니라 일이 닥쳐서, 말하자면 뜻에서가 아니라 필요에서 그를 덧붙여야 한다고 여겼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폰토스의 선주여, 그대가 훔친 물건이나 금지된 물건을 그대의 배에 한 번도 실은 적이 없고 짐을 빼돌리거나 변조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하나님의 일에서는 더욱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우리에게 밝혀 주기 바란다. 그대는 어떤 증표를 받고 사도 바울을 실었는가? 누가 그에게 칭호의 표지를 찍었는가? 누가 그를 그대에게 넘겨주었는가? 누가 그를 배에 실었는가? 그것을 밝혀야 그대가 그를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다. 바울이 자기 사도직의 모든 문서를 내놓은 이에게 속한 사람으로 증명되지 않도록 이렇게 말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사도라고 공언했다. 그것도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을 통한 것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다.” 물론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 공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공언은 다른 사람의 권위로 완성된다. 한 사람은 쓰고 다른 사람은 서명하며, 한 사람은 봉인하고 다른 사람은 공문서에 기록한다.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공언자이면서 증인이 될 수는 없다. 이 밖에도 그대는 분명히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말할 자들이 많이 오리라는 말씀을 읽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거짓말하는 자가 있다면,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선포하는 자는 얼마나 더 있겠는가? 나는 아직 제자이자 탐구자의 역할로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그대의 믿음을 꺾고 그대의 뻔뻔함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다. 그대는 그 믿음을 증명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고,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도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다른 신의 것이라고 하고, 사도도 이제 다른 신의 것이라고 하자. 다만 그 둘은 창조주의 문서가 아니고서는 증명되지 않는다. 사실 나에게는 창세기도 오래전에 바울을 약속해 두었다.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내린 저 예표들과 예언적 축복들 가운데서 베냐민에게 이르렀을 때,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다. 아침에는 아직 먹고 저녁에는 먹이를 줄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는 베냐민 지파에서 바울이 나오리라는 것을 내다보았던 것이다. 바울은 아침에 먹는 물어뜯는 이리, 곧 젊은 시절에 교회들의 박해자로서 주의 가축 떼를 황폐하게 할 이이고, 그 뒤 저녁에 먹이를 줄 이, 곧 이미 나이가 기울 무렵 이방인들의 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양들을 먹여 기를 이였다. 또한 사울이 처음에는 다윗을 가혹하게 추격하다가, 그 뒤 악을 행하고도 선으로 갚음을 받고서 뉘우치고 사과한 일도, 지파로 보아서는 사울 안에서 바울을, 동정녀의 혈통으로 보아서는 다윗 안에서 예수를 예고한 것일 뿐이다. 예표들의 이러한 신비가 그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분명 사도행전이 바울의 이 이력을 나에게 전해 주었고, 그대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거기에서 나는 박해자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을 통한 것도 아닌 사도임을 보여 준다. 거기에서 나 자신도 그를 믿게 되고, 거기에서 그대를 그의 변호에서 몰아낸다. 그리고 그대가 이렇게 말해도 두렵지 않다. “그러면 그대는 사도 바울을 부인하는가?” 나는 내가 지키는 이를 모독하지 않는다. 내가 부인하는 것은 그대가 증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부인하는 것은 그가 내 사람임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또는 그대가 우리의 믿음에 기댄다면, 그 믿음을 이루는 것들을 받아들여라. 그대가 그대의 믿음에 호소한다면, 그 믿음의 기초를 놓는 것들을 내놓아라. 그대가 믿는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믿는가? 또 그대가 믿는 것이 있다는 것은 오직 그에 의해서만 증명되는데, 그에게 맞서 믿는 그대는 도대체 어떤 신자인가? 이제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사도도 내 것에서 받아 가져라. 사도는 그리스도와 똑같이 내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같은 전선에서 싸우고, 바로 그 항변의 자리에서 도전할 것이다. 곧 창조주의 사도임이 부정되고 더 나아가 창조주에 맞서는 이로 내세워지는 사도라면, 창조주를 따라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율법에서 떨어져 나간 만큼 단호하게 다른 신을 공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유대교에서 돌이키게 하면서 어떤 신에 대한 믿음으로 돌이키게 하는지를 함께 보여 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로 옮겨 가야 하는지 모르고서는 아무도 창조주에게서 옮겨 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가 이미 다른 신을 계시했다면, 사도의 증언도 뒤따라야 했다. 그리스도가 계시한 그 신의 사도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리스도가 이미 계시한 신을 사도가 감추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그리스도가 신에 관해 그런 것을 아무것도 계시하지 않았다면, [그러면] 그 신은 더더욱 사도가 계시해야 했다. 이제는 다른 누구도 그 신을 계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조차 계시하지 않았다면 그 신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신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미리 놓아 둔 것은, 그리스도가 다른 신을 전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듯이 사도도 다른 신을 퍼뜨리지 않았음을 똑같이 증명하겠다고 이제부터 공언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바로 바울의 편지들 자체에서 증명할 것이다. 이 편지들 역시 그 수에서까지 훼손되었다는 판단은 이단의 복음서가 지닌 형태로 이미 앞서 내려졌어야 할 것이다.
번역 메모
- 1.1 status는 사물이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가리키므로 ‘존재 상태’로, retractatus는 이미 다룬 사물을 다시 따져 보는 일이므로 ‘다시 검토할 때’로 옮겼다. 기원을 알아야 존재를 확신하고, 존재를 확신해야 본질과 성질을 분별한다는 순서가 이 장 전체의 논증 틀이다.
- 1.2 ‘복음서의 사도 명단’은 누가복음 6:13-16의 열두 사도 명단을 가리킨다. 마르키온의 복음서도 누가복음을 바탕으로 하므로 바울은 이 명단에 없다. dignissime를 Kroymann은 apparatus에서 summo iure(전적인 권리로)로 풀이하며, 이에 따라 ‘마땅한 권리에 따라’로 옮겼다.
- 1.3 바울이 그리스도의 승천 뒤에 부름받은 일은 사도행전 9:1-9에 나온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여기서 아직 바울의 기원을 모르는 ‘새 제자’의 입장으로 말하며, 이 반론은 1.10에서 밝히듯 의도적으로 취한 역할이다. sciit는 Kroymann의 교정이다(M과 R1은 scit, R3는 sciuit). quiescente는 M과 R3의 독법이며 R1은 quiescentem이다.
- 1.4 마르키온은 폰토스(시노페) 출신의 선주였다. 이 문장은 해운 용어로 이루어져 있다. symbolum은 화물을 맡을 때 주고받는 증표, tituli character는 화물에 찍는 표지, imponere는 배에 싣는 일, exponere는 화물을 하역하여 내놓는 일을 가리킨다. auertere와 adulterare는 화물을 빼돌리고 변조하는 일로, 마르키온이 성경 본문을 잘라 내고 고친 일을 암시한다. numquam은 M의 독법이며 R과 이전 판본들은 nullum을 읽는다.
- 1.5 인용은 갈라디아서 1:1이다. Kroymann은 이전 판본들과 달리 ne illius probetur에서 새 문장을 시작하고 사본의 protulerit를 protulit로 고쳤다. illius qui omnia apostolatus eius instrumenta protulit는 바울의 사도직을 뒷받침하는 문서(창세기와 사도행전)를 내놓은 창조주를 가리키며, 말하는 주어는 마르키온이다.
- 1.7 scribere, subscribere, obsignare, actis referre는 공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고 봉인하고 관청 기록에 올리는 로마의 법적 절차를 가리킨다. professio(공언)는 호구 조사 등에서 하는 법적 신고이기도 하므로 professor를 ‘공언자’로 옮겼다.
- 1.8 누가복음 21:8. 개역개정은 “내가 그라”로 옮기지만, 테르툴리아누스의 라틴어 본문은 마태복음 24:5처럼 ego sum Christus(내가 그리스도다)로 되어 있다.
- 1.11 Kroymann은 Engelbrecht의 추정에 따라 sit Christus, sit et apostolus로 읽고(사본 MR: sit et Christus, sic apostolus), 사본의 ut 대신 nunc을 넣었다. alterius는 마르키온의 다른 신을 가리키므로 ‘다른 신의’로 옮겼다.
- 1.12 창세기 49:27의 야곱의 축복을 가리킨다. Kroymann은 apparatus에서 figuras를 figuratas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direxisset는 M의 독법이며 R은 dixisset이다.
- 1.13 창세기 49:27. 개역개정은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눈다는 뜻으로 옮기지만, 테르툴리아누스의 고대 라틴어 본문은 ad matutinum comedet adhuc et ad uesperam dabit escam(아침에는 아직 먹고 저녁에는 먹이를 줄 것이다)이다. 그는 ‘먹이를 준다’를 바울의 교사 활동으로 읽는다.
- 1.14 바울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점은 로마서 11:1과 빌립보서 3:5에 나온다. ‘이방인들의 교사’(doctor nationum)는 디모데전서 2:7의 표현과 같다. 원문의 ecclesiaium은 ecclesiarum의 인쇄 오류로 보고 ‘교회들의’로 옮겼다.
- 1.15 사울 왕이 다윗을 쫓다가 다윗에게 목숨을 건짐받고 자기는 악으로 갚았는데 다윗은 선으로 갚았다고 고백한 일은 사무엘상 24:16-21과 26:21에 나온다. recipientis는 Saulis에 걸리므로, 악을 행하고도 선으로 갚음을 받은 쪽은 사울이다. 사울 왕도 베냐민 지파였고(사무엘상 9:1-2), 바울의 히브리 이름도 사울이다(사도행전 13:9). ‘동정녀의 혈통으로’(secundum uirginis censum)는 마리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테르툴리아누스의 견해를 전제한다.
- 1.16 사도행전에 대한 언급이다. 마르키온은 사도행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2.24 참조). ordo는 바울이 박해자에서 사도가 되기까지의 경과를 가리키므로 ‘이력’으로 옮겼다.
- 1.17 갈라디아서 1:1의 표현(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을 통한 것도 아닌)을 사도행전 9:1-9의 다메섹 사건과 연결한다.
- 1.22 de meo는 apparatus에 따르면 de meo instrumento, 곧 테르툴리아누스가 받아들이는 문서인 사도행전을 가리킨다. quam meum apostolum quam et Christum은 테르툴리아누스가 흔히 쓰는 quam-quam(=tam-quam) 구문이므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똑같이 내 것이다’로 옮겼다. R3와 이전 판본들은 tam meum으로 읽는다.
- 1.23 ‘같은 전선’과 ‘자리’(gradus)는 검투나 전투의 용어이며, praescriptio는 소송에서 본안 심리 전에 상대의 청구 자격을 막는 법적 항변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4권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펼친 것과 같은 논증을 바울에게 적용한다.
- 1.24 a creatore는 R3의 독법이며 M과 R1은 ad creatorem을 읽는다. Kroymann은 a creatore를 택했다.
- 1.26 [그러면]은 Rhenanus의 셋째 판(R3)이 삭제한 at이다. Kroymann은 이 단어를 본문에 두되 괄호로 묶었다.
- 1.27 마르키온의 사도서(Apostolikon)는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라오디게아인들에게』(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의 열 편지로 이루어졌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들어 있지 않다(21장 참조). ‘수에서까지 훼손되었다’는 이 편지들의 수를 줄인 일을, ‘이단의 복음서가 지닌 형태’는 4권에서 다룬, 마르키온이 누가복음을 잘라 낸 복음서를 가리킨다.
판본과 수정본
Emil Kroymann 편집, Tertulliani opera III, CSEL 47, Vienna: F. Tempsky; Leipzig: G. Freytag, 1906, 568-650쪽
원문 sha256:602f161ee31382ad058eba3a17bdae5f402acd8016f58cd5164487683fc35e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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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oymann 1906 인쇄면. Kroymann 1906의 5권 1-21장 전체. 장 안의 의미 구간은 이 사이트의 읽기 대응이며 판본의 절 번호가 아니다.